THE METAMOPRHOSIS <변신>
"이 글은 내가 직접 쓴 것일까, 아니면 AI가 써준 것일까?"
나는 지금 이 글을 챗GPT와 함께 쓰고 있다. 누군가는 이걸 편의를 위한 선택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글쓰기 자체가, 이번 전시 <변신>의 핵심을 구성하는 하나의 미적 제스처이자 동시대 예술가의 실천적 입장이다.
예술가로서 나는 더 이상 '무엇을 새롭게 창작할 것인가?'보다는, '지금 우리 앞에 넘쳐나는 것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니콜라 부리요는 『포스트프로덕션』에서 예술가를 "이미 존재하는 것을 편집하고 배열하는 DJ 같은 존재"로 설명했다. 이 개념은 디지털 이미지, 사운드, 오브제들이 빠르게 유통되던 시기, 창작이 아닌 사용, 생산이 아닌 재조합이라는 전략의 가치를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더 가속화된 시공간 안에 있다. AI는 이미지를 '참조'하거나 '편집'하는 수준이 아니라, 스스로 생성하고 분화시키며, '무엇이 이미지인가'라는 감각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이미지를 너무 많이, 너무 빠르게, 너무 쉽게 소비하고 있다. 이미지는 손끝을 스치듯 사라지고, 감각은 멈추지 못한 채 다음 장면으로 미끄러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이미지들 대부분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떤 맥락도, 기억도, 사유도 없이 흘러간다. 그저 만들어지고, 보여지고, 사라질 뿐이다. 이미지는 콘텐츠로, 콘텐츠는 배경 소음이 된다. 이미지가 아닌 잔향만이 남는다.
이런 환경에서 예술은 어떤 감각을 조직할 수 있을까? 이제는 부리요가 말했던 사용의 예술(art of use)을 넘어, 의미 없는 생성의 폐기물 속에서 감각의 윤리를 다시 묻는 실천이 필요하다.
<변신>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나는 AI 기반 밈 이미지, 일명 'AI Slop' 또는 '이탈리안 브레인롯'과 같은 과잉된 시각 언어를 수집하고, 그들을 다시 손으로 빚고, 3D프린터로 출력하고, 전시장에 쌓으며, 또다시 AR로 재변환한다. 작품은 완성되지 않는다. 3D프린터는 전시 기간 내내 작동하고, 수정되지 않은 출력물들은 계속 쌓인다. 이 작업은 일종의 과정, 흐름, 미결정성의 시각화다.
나는 창작자가 아니라 전환자(transformer), 조작자(operator), 잔해 편집자(editor of remnants)로 움직인다. 이 서문을 AI와 함께 쓰는 행위 역시 그러한 실천의 일부다. 이것은 '창작의 권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의 위치를 재배치하는 일이다.
AI 시대의 예술은 단순한 도구 활용이 아니라, 감각과 책임, 이미지의 윤리를 다르게 설계하는 실천이다. <변신>은 그래서 조각이고, 이미지고, 실패고, 과정이고, 우리 감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이 변화의 속도 속에서 질문을 멈추지 않기로 했다.
당신은 이 이미지들과 이 조각들, 그리고 이 잔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아무 의미도 없는 이미지들 사이에서, 당신은 무엇을 멈추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인가?